삶에는 인간 개인의 내부의지뿐 아니라 섭리라는 외부의지가 틀림없이 작용했다. 그것이 이른바, '때'라고 하는 우주의 간섭이었다. 나와 세상을 구별 못하던 아이의 시간, 나와 타자를 구별 못하던 소녀의 시간, 생리를 하며 여자가 되는 시간, 자연으로까지 신체 감각기관이 열리는 시간, 자기라는 막이 찢기고 초자아적 삶을 사는 시간, 인생과 싸우는 시간, 싸움을 멈추고 평화협정을 맺는 시간, 자아를 버리고 현재를 아는 시간, 나를 타인처럼 3인칭으로 여기는 시간, 선량해지는 시간, 죽음을 향해 돌아가는 고독의 시간, 육체를 잃고도 의식이 뭉쳐 있을 시간, 그마저도 해체될 시간......
삶에는 인간 개인의 내부의지뿐 아니라 섭리라는 외부의지가 틀림없이 작용했다. 그것이 이른바, '때'라고 하는 우주의 간섭이었다. 나와 세상을 구별 못하던 아이의 시간, 나와 타자를 구별 못하던 소녀의 시간, 생리를 하며 여자가 되는 시간, 자연으로까지 신체 감각기관이 열리는 시간, 자기라는 막이 찢기고 초자아적 삶을 사는 시간, 인생과 싸우는 시간, 싸움을 멈추고 평화협정을 맺는 시간, 자아를 버리고 현재를 아는 시간, 나를 타인처럼 3인칭으로 여기는 시간, 선량해지는 시간, 죽음을 향해 돌아가는 고독의 시간, 육체를 잃고도 의식이 뭉쳐 있을 시간, 그마저도 해체될 시간......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현은 2주 후에 서울 시향이 연주하는 말러 음악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누경은 멈칫했으나 그 제안에 응했다. 누경은 단지 지루한 나머지 끌리지도 않는 남자를 만나 뒤따라 다니는 자신이 부도덕하게 느껴져서 문득문득 제동이 걸렸다.
카 오디오에서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왔다. 카치니의 음색은 격렬하면서도 맑았다. 그러자 자기의 진실과 다르게 시간이 흘러간들 어떠랴 싶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진실이라도 생겨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누경은 그 남자와 자신 사이의 빈터가 편안했다. 숲 한가운데의 풀밭 같은 빈터에서 숨쉬기 위해서, 그 남자를 또 만나게 될 것 같았다. 기현은 누경을 아파트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예의바른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갔다.
어쨌든 이번 신작은 마치 <유리로 만든 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클래식과 와인, 유리공예같은 주인공의 취미나 직업이 강조되면서 자아내는 섬세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 이유를 알 수 없는 존재의 우울을 겪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 느닷없이 떠난 섬으로의 여행같은 것들.
"난 내 스스로 나쁜 인생을 만들어요." 라고 말하는 주인공 누경. 그런 사치스러운 우울같은 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거부감도 든다. 왠지 세기말에나 어울릴 것 같은 존재의 고민들. 지금은 2009년이고, '대의가 있다면 서른두 평 아파트'거나 혹 기개를 품은 남아라면 쉰 평 정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박민규가 통렬하게 비꼬지 '않아도', 다들 잘 살고 있다.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난 내 스스로 나쁜 인생을 만들어요."라니, 블러질한 셀카에 예쁜 폰트로 싸이에 올려놓으면 허세라고 욕 먹기 딱 좋겠는걸.
도대체 전경린은 이제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와 박히는 문장들은, 나 역시 촌스럽기 때문인가? 지금의 나 역시 누경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새로운 진실이 생겨나기를......실은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조차도 사치가 아닌 지 스스로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김연수란 작가를 꽤 늦게 알았다. 한 선배가 그의 책을 추천하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그 선배와 그리 친하진 않지만, 사실 그 선배는 내가 동경하고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였던데다, 게다가 그 놀라운 제목이라니.......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했으므로, 그 날로 당장 그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이미 꽤 오랫동안 책을 읽기가 힘들었던 탓도 있었고, 잠깐 들춰본 소설의 내용은 도무지 기승전결을 알기 어려운데다 쉽게 읽히는 문체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책 편식이 심한데다 별로 성실한 독자도 아니어서, 조정래나 박완서 정도로 어떤 천부적인 이야기꾼의 기질이 느껴지지 않으면 처음부터 읽지도 않았다. 작가 소개를 보다가 알았다. 예전에 서점에서 일할 때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제목에 왠지 재기발랄할 것 같아 몇 장 펴보았다가 별 시덥잖은 남자의 이야기같아 던져버렸던 그 책도 이 사람이 쓴 거였단걸......하지만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난 벌써 읽지도 않은 이 책과 작가에 매료되어서, 이 사람이 쓴 걸 꼭 다 읽어볼 거라고 다짐한 다음이었다.
정말로 꽤 오래, 사다만 놓고 오랫동안 그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작고 어두운 녹색의 책은 그 오랫동안 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알 수 없는 위안이 되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그건 정말 외로워 보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용한 위로였기 때문이었다. 또 그건 아주 뻔한 말, 그럴 듯 하게 지어낸 싸이용 문구같기도 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하지만 나는 그 짧은 말 뒷편에 헤아릴 수 없는 침묵을 감지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정말 외롭거나 어쨌거나 하여튼 알 수 없는 이유로 힘겨워질 때 이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좋은 약도 한번 이상은 소용이 없어지니까. 나는 그 언젠가를 위해 소중하게 아껴놓고 싶었다. 왠지 정말 그 책엔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말 그 책에 뭔가가 있었냐면, 내가 그 책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치유라도 받았냐면, 그건 아니었다. 방황과 고민은 그저 늘 하는 것이었지 어느 푸릇한 청춘들처럼 삶이 힘겨워질 정도로 괴로운 적도 없어서 난 그냥 어느 때인가 그 책을 읽어버렸다. 어디서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버스 안에서였나......하여튼 어디론가 멀리 가던 그 길목 위 어디에서 그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남자가 있었고, 어떤 여자가 있었고, 그 남자의 할아버지가 남겨주었던 사진이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또다른 남자가 있었고......내가 가늠하기 어려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젊었을때, 아직 서로 부둥켜 안고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소리칠 수 있는 나이였을때, 그들이 끊임없이 늘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단 건 오랫동안 부러웠다. 내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거, 난 그게 참 부러웠었다. 그 사랑이.
내가 정말 부러웠던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청춘靑春이라는 거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그런 식의 외로움이라는 거, 난 그게 부러웠다. 정말 알 수 없는 혼란한 방황과 외로움이라는 건 사람이 젊었을때나 겪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내가 젊었을 때란 없었다. 나는 아이였고 다만 낡았을 뿐이다. 나는 그 파릇하게 반짝이는 외롭고 막막한 청춘이 부러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할 수 없는 그 청춘이 부러웠다. 스무 살이어야 했을때 아직 어렸고 스무 살이 됐을 땐 스무 살이라고 말하기엔 멋쩍어져 버렸던 그 어느 틈에 나는 정말로 나의 스무 살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청춘을 가장할 나이조차 없었던 나, 그런 청춘이 없이 나는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일까......생각하는 것이다.
무작정 떠났던 여름의 여행에 단 한 권 들고 갔던 책이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었던 건 또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여행을 꿈꾸는 건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이와 낯선 것들로만 가득한 곳에서 온전히 혼자인 나를 바라보고 싶어서였고, 또 그런 곳에서라면 내가 잃어버렸던 청춘이라는 것도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라도 가져야했고, 그래서 누군가의 청춘이라도 찬찬히 들여다보아 내 것이 될 수 있기를 힘없이 빌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래서 그 여행에서 그 책을 읽고 청춘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냐면, 역시 잘 모르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그 책을 다 읽지도 못했다. 읽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맨처음 도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헤어지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혼자일 때는 계속해서 걸었다. 런던 시내가 마치 서울의 종로 어귀쯤 되는 것처럼, 어디로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나는 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골목들과 보도블럭 대신 깔려있던 넓고 둥근 검은 돌들일 정도로...... 아주 가끔, 그렇게 걷다가 다리와 발바닥이 더이상 참을 수 없이 아플 때쯤 그 책을 펼쳤다. 와닿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한국에 있었고, 나는 그로부터 12시간 거리의 낯선 대륙에 있었고, 그는 입영통지서며 훈련이며 PX따위의 단어에 익숙한 남자였고, 나는 두말할 것 없이 여자였고, 그의 청춘은 김광석이 살아있던 때였고, 내가 초등학교 때던가 중학교 때던가 김광석을 알았을때 그는 이미 故김광석이었을 뿐이고...... 하여튼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을까. 그의 책을 빌미로 조금이나마 청춘이라는 걸 느껴보려던 시도는 실패했고, 그 책은 고작 마트의 영수증이나 미술관에서 구입한 엽서를 구겨지지 않게 보관하는 용도로 전락해버렸다.
다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등나무엔 초승달 벌써 올라와 라는 장이다. 제목은 정약용의 시구이지만 실상은 광석의 노래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김광석의 노래가 청춘의 결정적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때 한 여자애와 헤어지고 신문을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울었다고 했다.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나의 경험이 같다. 그는 그때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완벽히 소통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때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더라면 괜찮았을까. 나의 생각이 과거형인 이유는 이미 내가 그때와 이만큼 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 누군가와 헤어져도 그때처럼 울지 않게 되었다. 그 점에서 나는 책 속의 그와 또 괴리감을 느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어야 했을 때 듣지 못하고 이만큼 지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느끼는 건 부질없는 시기심인가?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쓸 수 있을 때는 잃어버린 사랑조차 아직 자신에게는 유효할 때이다. 나도 언제쯤엔 '사랑을 잃었다'고 현학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긴 하겠지만, 정말 사랑을 잃는 때는 상실했다는 사실조차 자신에게 아무 것도 아닐 때쯤이 아닌가.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의 이 시점에서 나는 사랑을 잃은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사랑도 없는 내가 왜 '가엾은 내 사랑' 어쩌구 하며 속닥이고 있는건가. 아마도 내가 공명하는 '가엾는 내 사랑'은 과거의 실제 경험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거나 오지 않을 가상의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키치의 낭만이 아니던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선생님, 뭐하세요?"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아이들은 언제나 까마귀같은 발목을 드러냈다.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풀과 나무들과 다를 것이 없어서 언제나 교복 바지가 댕강 잘라낸 것마냥 아슬하기 일쑤였다. 내가 교육실습을 나온 것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교실 뒷편에 앉아있는 나의 눈치만 보며 경계하는 것 같더니, 그 날 오후에 벌써 허수아비처럼 비척이며 나에게 다가와 실실 웃는 녀석들이 생겨났다. 선생님은 어디 살아요? 선생님은 키가 몇이에요? 선생님은 남자친구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그때 나는 자주 교실 벽에 여위게 붙어있는 교훈을 바라보고는 했다. 올바른 사람이 되자. 튼튼한 사람이 되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따뜻한 사람이 되자.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고 종종거리며 웃던 나의 녀석들, 아이들, 사내들, 아아 너희는 대체 무엇이 되려고 이렇게 무섭게 자라고 있는 걸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깡충한 교복 바지 아래 까마귀같은 발목을 드러내던, 얼굴과 셔츠깃에 회색빛 얼룩을 묻히고 다니던, 아직 자라지 않아 그저 불쌍하고 가엾던 나의 사내 녀석들은 지금쯤 그 올바르고 튼튼하고 쓸모 있고 따뜻한 그 소박하고도 무서운 교훈을 기억조차 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 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
그러나 내 인생의 1부는 끝났다 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
많은 가게들을 드나들어야지 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
좀더 근엄하게 내 인생의 2부를 알리고 싶어
내가 마음에 들고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인생!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되고 내 마음에 드는 인생을
일월부터 다시 계획해야지 바구니와 빵은 아직 많이 남아있고
접시 위의 물은 마를 줄 모르네
물고기들과 꼬리를 맞대고 노란 별들의 세계로 가서
물고기 나무를 심어야겠다
*
3부의 수프는 식었고 당신의 입술로 흘러드는 포도주도
사실이 아니야 그렇지만 인생의 3부에서 다시 말할래
나는 내 인생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아들도 딸도 가짜지만 내 말은 거짓이 아니야
튼튼한 꼬리를 가지고 도끼처럼 나무를 오르는 물고기들
주렁주렁 물고기가 열리는 나무 아래서
내 인생의 1부와 2부를 깨닫고
3부의 문이 열리지 않도록 기도하는 내 인생!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싹둑 잘려 나가고
훨씬 밝아진 인생의 3부를 보고 있어
나는 드디어 꼬리치며 웃기 시작했다
몸뚱이가 무거워 숨길 곳이 없지
그래, 시침 뚝 떼고 살아보려 했어
온 몸에 힘 콱 주고 똑바로 기어보려 했어
나도 모르게 캄캄하게 더 깊이 패였지
그래, 슬쩍 몸을 밀어 넣고 아무도 모르게
한 삼십년 자고 나면 풀어져 버릴까
단단하게 나를 묶자, 흙 사이에서 흙처럼 나무뿌리 사이에서
뿌리처럼 죽은 듯이 한 백년만 자는거야
허튼 꿈따위 아예 없이 모호하게
무슨 욕설처럼 꽃들 피어오르겠지. 훤한 낯짝 하고
그 진절머리나는 해 매일 올라오겠지
한 삼십년 흐르고 나면,
어느 밤 한가운데에 문득 내 이름 부르겠지
그 소리 아득히 잦아들겠지. 내 깊은 잠을 흔들겠지
그 때 아 잘 잤다, 기지개 펴는거야
후룩, 벗어 던지는거야
이런 굴욕 전부 벗어버리는거야
아, 그 때도 넌 지금처럼 울어줄까
시사매거진 2580 (2008년 10월 26일 방송분)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사업을 하다 수억 원의 빚을 진 모씨가 10여년만에 빚을 갚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는 밤 12시가 되면 24시간 사우나에 가서 목욕탕 청소를 한다.
목욕탕 청소가 끝나면 새벽 2시, 그는 수백 세대의 아파트에 신문배달을 한다.
신문배달이 끝나면 아침, 그는 떡배달을 한다.
오후에는 학원 차 운전, 저녁에는 다시 떡배달을 한다.
사이사이에 신문판촉과 폐지수집도 한다.
밤 9시 그의 마지막 아르바이트는 전주에서 군산까지 떡 배달.
그는 하루에 7개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다시 목욕탕 청소를 하러간다.
목욕탕 청소 전, 보일러실 한켠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그.
하루에 한 시간의 잠을 자고 7개의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가 버는 돈은 한 달에 약 450만원.
이 돈은 거의 빚을 갚는데 쓰인다.
이렇게 일한 것도 10년 째, 그는 마지막 남은 빚 백만원을 갚음으로써 빚 3억 5천만원을 모두 갚는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의 빚의 규모와 그가 일한 노동의 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3억 5천만원이라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10여년 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하루종일 노동해야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10여년의 노동의 대가, 3억 5천. 그렇지만
서울에서는 4인 가족이 살 만한 아파트를 겨우 구할 수 있는 돈이다.
강남 타워팰리스에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은 적어도 이삼십억 원.
검찰이 한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며 말한 구속 사유, 단지 그가 쓴 글 몇 편로 인해 발생했다는 국가적 손실은 20억 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에 대처한다며 연기금으로 투입했던 돈은 단 한 번에 수천 억에서 수조 원.
그리고 용산 철거민에게 이 나라가 제시했던 이주 비용은 단 300만원.
한 사람이 꼬박 10여년을 일해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 3억 5천
경제와 소비의 규모는 자꾸만 커지는데, 노동의 대가는 어째서 이다지도 작기만 한 걸까.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 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내가 오래도록 혼란스러워 했던 건, 아마 그리 길지도 않은 내가 살아온 시간조차 어떤 연속성도 없이 분절되어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각각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각각의 '나'들로, 나는 늘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에 괴리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워 한다. 늘 '그때 나는 살아있었을까'라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단일한 '나'를 찾을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내게 위안이 되었던 건, 소설의 주인공처럼,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몇번이고 다른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나라는 ...... 아직 난 닿지 못한 진실이지만,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을 겪었을 누군가가 삶이란 그런 거야, 라고 선배같이 말해주는 그런 구절.
나는 얼마나 더 살아야 나를 나라고 생각하게 될까......
누군 만날 사람도 없어서 방바닥이랑 연애하는데
다시 봐도 이건 테러
선배 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이 달력을 보는 나는 아랑곳이 없어
흙흙
